Religion과 종교(宗敎)의 엄밀한 비교
1. 서론
서구의 ’Religion’과 동아시아의 ’종교(宗敎)’는 사전적으로는 동의어로 통용되지만, 두 용어의 지적 계보와 개념적 구조를 심층적으로 추적하면 단순한 번역 관계를 넘어서는 근본적인 단층이 드러난다. 이 둘의 관계는 상호 호환 가능한 개념의 교환이 아니라, 하나의 고유한 문명사적 맥락에서 형성된 개념 체계가 전혀 다른 지적 토양에 이식되면서 발생한 ’변용(transformation)’과 ’충돌(conflict)’의 역사에 가깝다.1 ’Religion’이 신과의 수직적 ’결속’을 핵심으로 하여 사회의 특정 영역으로 ’분리’되고 ’제도화’된 개념이라면, ’종교’는 본래 ’으뜸 되는 가르침’이라는 위계적 의미를 가지며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타 사상과 ’융합’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존재해왔다.
본 안내서는 이 두 개념이 단순한 어휘의 차이를 넘어 세계를 인식하고 구조화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비롯됨을 논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안내서는 네 가지 다층적 구조를 통해 논지를 전개한다. 제1부와 제2부에서는 각각 ’Religion’과 ’종교’의 어원학적 계보와 역사적 형성 과정을 독립적으로 추적한다. 제3부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초월성, 공동체, 신념과 실천 등 핵심 개념들을 비교 분석하여 둘 사이의 구조적 차이를 명확히 한다. 마지막으로 제4부에서는 서구적 ‘Religion’ 범주와 동아시아 전통 사이의 개념적 충돌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금석으로서 유교(儒敎) 사례를 심층적으로 검토한다. 이 다각적인 분석을 통해, 두 용어 사이의 엄밀한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단순한 학술적 탐구를 넘어, 타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우리가 자명하게 사용해 온 개념의 한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필수적인 과정임을 보이고자 한다.
2. 서구 ‘Religion’ 개념의 계보학
서구의 ‘Religion’ 개념은 고대 로마의 사회적 덕목에서 출발하여 기독교 신학의 세례를 거쳐 근대 사회과학의 분석 대상으로 정립되는 복잡한 변천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의 핵심에는 ’결속’이라는 관념의 부상과 사회의 다른 영역으로부터 ’분리’되고 ’제도화’되는 역사가 자리 잡고 있다.
2.1 어원 논쟁: 재독(Relegere)과 재결속(Religare) 사이
’Religion’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 ’religio’의 해석을 둘러싼 고대의 논쟁은 이 개념의 향방을 결정지은 중요한 지성사적 사건이다. 이 논쟁은 단순한 언어학적 이견이 아니라, 로마의 다신교적 시민 윤리가 기독교의 유일신적 구원론으로 대체되는 문명사적 전환을 반영하는 이데올로기적 투쟁이었다.
로마 공화정 시대의 철학자 키케로(Cicero)는 ’religio’의 어원을 ‘다시(re) 읽다’ 혹은 ’신중히 숙고하다(legere)’로 보았다.2 그에게 ’religio’는 신들에 대한 의무와 제의를 성실하고 꼼꼼하게 ‘다시 살피고 고찰하는’ 태도, 즉 도덕적 성실성(conscientiousness)과 양심적 정확성을 의미했다.2 이 개념은 신과의 인격적 관계나 내면적 신앙보다는, 규정된 의무를 올바르게 이행하는 ’태도’와 ’신중함’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신뿐만 아니라 가족, 이웃, 국가에 대한 사회적 의무 전반을 포괄하는 로마 사회의 중요한 덕목이었다.2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 제국 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다. 4세기 기독교 변증가 락탄티우스(Lactantius)와 교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는 ’religio’를 ‘다시(re) 묶다’ 또는 ’연결하다(ligare)’에서 파생된 것으로 재해석했다.2 이 해석에 따르면, ’religion’은 원죄로 인해 신으로부터 단절된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해 신과 ’다시 결속’되는 행위를 의미한다.4 이 ‘religare’ 해석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한다는 기독교의 핵심 구원 서사와 완벽하게 조응했다.
결과적으로 ‘religare’ 해석이 지성사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Religion’의 개념적 중심축은 ’인간의 성실한 태도’에서 ’신과의 수직적 관계’로 결정적으로 이동했다. 이는 다른 신들이나 세속적 의무와의 결속을 배제하고 오직 유일신과의 배타적 계약 관계만을 ‘진정한’ 종교로 규정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로써 ’Religion’은 본질적으로 신과의 ’결속’과 그에 따르는 ’의무’를 내포하는, 특히 아브라함 계통의 유일신 종교에 최적화된 개념으로 고착화되었다.
2.2 로마의 Religio에서 기독교의 Religion으로: 분리와 제도화의 역사
‘Religion’ 개념은 어원적 재편과 더불어 역사적으로 그 의미의 범위가 축소되고 사회의 특정 영역으로 분리되는 과정을 겪었다. 고대 로마에서 ’religio’는 삶의 전반에 걸쳐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그것은 성(聖)과 속(俗)이 명확히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들에 대한 제의(cultum deorum)는 물론이고, 군인이 포로가 되어 적에게 한 맹세의 준수(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용례), 심지어 자연 현상에 대한 경외심(코끼리가 밤하늘에 보이는 경외심에 대한 플리니우스의 용례)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양심적 의무’ 또는 ’경외감’을 지칭했다.2
이러한 포괄적 개념은 중세에 이르러 결정적인 전환을 맞는다. 1200년대에 ’religion’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처음 유입되었을 때, 그 주된 의미는 ‘수도원 서약에 묶인 삶(life bound by monastic vows)’ 또는 수도회 자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한정되었다.2 이는 ’종교적인 삶’이 일반 ’세속적인 삶’과 구별되는 특별한 상태라는 인식을 낳았으며, 개념의 ’분리화(compartmentalization)’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분리 경향은 근대에 들어와 정치적, 법적 개념으로 확립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과 아우크스부르크 화의(1555)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은 ’Religion’을 교회의 영역과 국가(시민 당국)의 영역을 구분하는 핵심적인 기준으로 삼았다.2 이로써 ’Religion’은 사회의 다른 영역, 즉 정치, 경제, 과학 등과 구별되는 하나의 독립된 ’제도’이자 ’영역’으로 인식하는 근대적 관점이 탄생했다. 이는 종교를 삶의 총체적 지평에서 분리하여 하나의 사회적 하위 시스템(sub-system)으로 간주하는 시각의 출발점이었다.
2.3 근대 사회과학의 구성물: 객관화된 ‘종교’
근대 계몽주의 이후, 분리되고 제도화된 ’Religion’은 사회과학의 객관적인 분석 대상으로 자리매김했다. 사회학의 선구자들은 종교를 사회 현상으로 규정하고 그 기능과 구조를 분석하는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은 종교를 “성스러운 것들(sacred things)에 관련된 믿음과 관행의 통일된 체계“로 정의했다.7 그에게 ’성스러운 것’은 일상적인 ’세속적인 것(profane)’과 엄격히 구별되며 경외의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믿음과 관행이 신자들을 “하나의 도덕적 공동체(moral community), 즉 교회(Church)로 통합한다“는 점이다.7 뒤르켐은 종교의 핵심 기능이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고 집단적 가치를 공유하게 함으로써 사회를 통합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이 정의는 종교를 개인의 내면적 신념을 넘어, 명확한 경계를 가진 사회 집단과 제도로 분석하는 현대적 관점의 기초를 마련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는 종교를 인간이 삶의 비합리적인 문제, 특히 고통의 문제(신정론, theodicy)와 구원의 문제(soteriology)에 대한 합리적인 해답을 찾는 과정으로 이해했다.8 그는 종교가 체계화된 교리와 윤리를 통해 인간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동기를 제공하는 합리적 시스템이라고 보았다. 그의 연구는 종교가 문화와 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종교를 사회 변동을 추동하는 독립 변수로 간주하는 길을 열었다.
반면,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제도적 측면보다 개인의 경험을 강조했다. 그는 종교를 “개인이 신성하다고 여기는 것과 관계를 맺는 고독한 경험“으로 정의하며, 종교의 본질이 교리나 의례가 아닌 개인의 내면적, 심리적 상태에 있다고 보았다.9 이는 제도화된 종교 개념에 대한 중요한 대안적 시각을 제공했지만, 여전히 종교를 삶의 다른 영역과 구별되는 ’특별한 경험’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는 근대적 분리의 패러다임 안에 있었다.
이처럼 서구에서 ‘Religion’ 개념의 근대화 과정은 역설적으로 ‘종교의 세속화’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었다. 중세까지 서구 사회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총체적 세계관이었던 기독교는 10, 근대를 거치며 정치, 과학 등과 분리된 사회의 한 ’영역’으로 재편되었다. 사회과학은 바로 이렇게 분리되고 객관화된 ’Religion’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따라서 ’Religion’을 정의하려는 근대적 시도 자체가 종교를 삶의 총체성에서 분리하여 선택 가능한 하나의 제도로 만드는 과정에 기여했으며, 이는 사회 전반에 총체적으로 확산된 동아시아의 ‘가르침(敎)’ 개념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3. 동아시아 ‘종교(宗敎)’ 개념의 형성사
동아시아의 ’종교(宗敎)’라는 용어는 서구의 ’Religion’과는 전혀 다른 지적 토양에서 발아하고 성장했다. 그 본래적 의미는 신과의 ’결속’이 아닌 ’가르침’의 위계에 있었으며, 배타적 신념 체계가 아닌 상호 융합적인 사상 생태계 속에서 이해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서구 개념의 번역어로 채택되면서 본래의 의미와 충돌하며 새로운 개념적 혼란을 겪게 된다.
3.1 본래적 의미: ’으뜸 되는 가르침’으로서의 종교
’종교’라는 한자어는 본래 불교에서 유래한 용어다. 이는 산스크리트어 ’싯단타 데사나(Siddhānta-deśanā)’를 한역한 것으로, 그 의미는 ‘궁극적 진리의 가르침’ 또는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다.12 이 용어는 여러 가르침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고 근원적인 것을 지칭하는 개념이었다.
이러한 의미는 한자 자체의 분석을 통해 더욱 명확해진다. ‘마루 종(宗)’ 자는 집을 뜻하는 갓머리(宀)와 신이나 조상의 위패를 상징하는 보일 시(示)가 결합된 형태다.13 이는 본래 조상을 모시는 사당을 의미하며, 여기서 파생하여 한 집안이나 학파의 ‘근본’, ‘으뜸’, ’핵심’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13 ’가르칠 교(敎)’는 지식이나 도리를 전수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종교(宗敎)’의 원뜻은 문자 그대로 ‘가르침들 중 으뜸가는 가르침’ 또는 ’가르침의 정수’를 의미하는 위계적 개념이다.12 이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서구의 ’Religion’과는 그 출발점과 의미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3.2 동아시아의 지성적 토양: 삼교회통(三敎會通)의 사상
’종교’의 원뜻이 형성된 동아시아의 지성적 토양은 배타성보다는 융합성을 특징으로 한다. 동아시아 사상사는 유교(儒敎), 불교(佛敎), 도교(道敎)라는 세 가지 주요 사상, 즉 ’삼교(三敎)’가 서로를 배척하기보다는 수백 년에 걸쳐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하고 융합해 온 역사다.16 개인의 삶 속에서 삼교는 분리된 신앙 체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삶의 지혜로 받아들여졌다. 예를 들어, 한 개인은 사회생활에서는 유교적 윤리인 충효(忠孝)를 따르면서, 개인적 수양을 위해서는 도교적 양생술을 익히고, 사후 세계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불교적 내세관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18
이러한 맥락에서 ’교(敎)’라는 개념은 배타적인 신앙고백을 요구하는 교리 체계가 아니라, 삶의 지혜와 윤리, 수양의 방법을 제시하는 다양한 ‘가르침’ 또는 ’학파’로 인식되었다.19 유교는 인간관계와 사회 질서의 가르침이었고, 도교는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무위(無爲)의 가르침이었으며, 불교는 고통의 소멸과 해탈에 이르는 가르침이었다. 이 ’가르침’들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지혜의 원천으로 여겨졌으며, 하나의 가르침을 선택하는 것이 다른 가르침을 배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3.3 근대적 번역어로서의 탄생: 서구 개념의 수용과 변용
19세기 말, 동아시아가 서구 근대성과 조우하면서 새로운 개념적 전환이 일어났다.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일본의 지식인들은 ’religion’이라는 낯선 개념을 번역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그들은 기존 불교 용어였던 ’종교(宗敎, shūkyō)’를 ’religion’의 대역어로 채택했다.1 이는 서구의 분리되고 제도화된 ‘Religion’ 개념을 동아시아의 지적 담론 속으로 이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 번역어는 곧바로 서구적 의미 그대로 수용되지 않았다. 한국, 중국 등지로 ’종교’라는 용어가 확산되었을 때, 초기 지식인들은 이 말을 한자의 원뜻에 기대어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다. 즉, ’종교’를 ’최고의 가르침’이나 ’국가 통치의 근본이 되는 가르침(국교)’으로 해석한 것이다.1 이는 서구의 ‘Religion’ 개념이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교(敎)’ 개념이라는 필터를 통해 굴절되어 수용되었음을 보여준다. ’religion’이라는 낯선 개념을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교’나 ’도’로 이해했고, 이 개념은 인간의 도리를 함양하는 진리이자 국가의 근간이 되어야 할 신념 체계라는 전통적 의미를 담고 있었다.
’종교’가 ’religion’의 공식 번역어로 정착하는 과정은 동아시아 국가별로 상당한 시차를 보였다. 일본이 1880년대에 비교적 빠르게 정착시킨 반면, 한국과 중국은 1910년대에 이르러서야 보편화되었고, 베트남은 그보다 훨씬 늦었다.1 이는 각 사회가 서구 근대성과 조우하고 자신들의 전통을 재해석하는 과정이 얼마나 상이하고 복잡했는지를 시사한다.
이 과정에서 ’종교’라는 번역어의 채택은 동아시아 지성사에 일종의 ’범주화의 폭력(categorical violence)’을 행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전까지 유기적으로 융합되거나 상호 보완적으로 존재하던 유교, 불교, 도교를 서구의 ’Religion’이라는 단일하고 배타적인 범주 아래 재편하고 서열화하도록 강제했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분류 체계 속에서 서구 기독교와 유사한 제도적 특징(사원, 승려, 경전 등)을 가진 불교나 도교는 비교적 쉽게 ’종교’로 분류될 수 있었다.20 그러나 사회 전반에 윤리 체계로 확산되어 있고 뚜렷한 교단 조직이나 내세론이 부족한 유교는 이 범주에 잘 부합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유교는 종교인가?“라는 질문이 탄생했으며, 유교는 ’철학’이나 ’윤리’로 격하되거나 심지어 ’미신’으로 치부되는 운명을 맞기도 했다.21 결국 ’종교’라는 번역어의 도입은 단순한 어휘 채택을 넘어, 동아시아 전통의 자기 인식을 서구적 틀에 맞춰 재구성하고, 그 과정에서 특정 전통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드는 인식론적 단절을 초래한 것이다.
4. 핵심 개념의 비교 분석
’Religion’과 ’종교’의 상이한 계보와 형성사는 두 개념의 핵심적인 구조적 차이를 낳았다. 초월적 실재를 인식하는 방식, 공동체의 성격, 그리고 신념과 실천의 관계에서 두 개념은 근본적으로 다른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4.1 초월성의 문제: 인격신(Personal God) 대 천(天)·도(道)
두 개념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초월적 실재의 성격에서 드러난다. 서구 ’Religion’의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 계통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는 세계를 창조하고,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하며, 역사를 주관하고, 최후에 인간을 심판하는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유일신(God)을 상정한다.11 이 패러다임에서 신과 인간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 주인과 종의 수직적 관계로 설정되며, ’religare’는 바로 이 인격신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는 ’재결속’을 의미한다. 신은 인간의 기도에 응답하고, 사랑과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며, 인간 역사에 직접 개입하는 행위의 주체다.
반면, 동아시아의 ‘교(敎)’ 전통에서 초월성은 주로 비인격적인 원리나 법칙으로 이해되었다. 유교의 핵심 개념인 ’천(天)’은 초기에는 의지를 가진 인격신(상제, 上帝)의 면모를 지니기도 했으나, 점차 인간 사회의 도덕적 근거를 제공하는 비인격적이고 합리적인 ‘도덕 원리’ 또는 ’우주적 질서’로 이해되었다.23 ’천’은 인간에게 선한 본성(性)을 부여하고 인간이 따라야 할 도덕 법칙(천명, 天命)의 근원이 되지만, 기독교의 신처럼 직접적으로 기적을 행하거나 인격적으로 교류하는 존재는 아니다.25
도교의 ’도(道)’는 이러한 비인격적 성격이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도’는 만물의 근원이자 우주 만물을 생성하고 변화시키는 궁극적 실재이지만, 그것은 이름 붙일 수도 없고 형상도 없는 자연 법칙 그 자체다.16 인간은 ’도’를 숭배하거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노력을 버리고 ’도’의 흐름에 순응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을 통해 ’도’와 합일하고자 한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초월성은 ’관계’를 맺는 대상이라기보다는 ‘깨닫고’ ‘따라야 할’ 원리에 가깝다.
4.2 공동체의 성격: 배타적 ‘교회’ 대 포괄적 ‘사회’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식에서도 두 개념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뒤르켐의 정의에서 명확히 드러나듯, 서구 ’Religion’은 신자들을 비신자들과 구분하는 명확한 경계를 가진 ’교회(Church)’라는 배타적 도덕 공동체를 형성하는 경향이 강하다.7 이 공동체는 공유된 신념(교리)과 의례를 통해 강한 내부적 결속을 다지며, 소속 여부가 정체성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세례’나 ’입교’와 같은 의식은 공동체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상징적인 장치로 기능한다.
이에 반해, 동아시아의 전통, 특히 유교는 특정 종교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 ’확산된 종교(diffused religion)’의 형태를 띤다.20 유교적 가르침은 가족(효), 사회(충), 국가 윤리 전반에 내재하여 사회 구성원의 행동 규범과 가치 체계를 형성한다.22 유교적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별도의 ‘입교’ 절차나 배타적 공동체에 가입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특정 신자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따라야 할 보편적 윤리 규범으로 작동한다. 불교나 도교가 사원이나 도관이라는 제도적 중심을 가지는 경우에도, 그 경계는 서구의 ’교회’만큼 배타적이지 않았으며, 일반 민중의 삶 속에 다양한 형태로 융합되어 나타났다.
4.3 신념 대 실천: 정통(Orthodoxy)과 정행(Orthopraxy)
무엇을 더 중시하는가에 따라서도 두 개념은 다른 지향점을 보인다. 서구 기독교 전통은 역사적으로 ‘올바른 믿음(right belief)’, 즉 ’정통(Orthodoxy)’을 강조해왔다. 삼위일체, 예수의 신성 등 핵심 교리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동의가 구원의 전제 조건으로 간주되었다.27 물론 윤리적 실천이 경시된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올바른 신앙고백이 행위의 기반이자 핵심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동아시아 전통, 특히 유교는 ‘올바른 실천(right practice)’, 즉 ’정행(Orthopraxy)’을 핵심으로 삼는다. 조상 제사(祭祀)와 같은 의례(禮)를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정확하게 수행하는 것, 그리고 군신, 부자, 부부 등 오륜(五倫)의 관계 속에서 각자의 윤리적 역할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24 공자는 귀신(鬼神)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 “공경하되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고 답하며, 초월적 존재에 대한 사변적인 믿음보다 현실 세계에서의 도덕적 실천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다.28 무엇을 ’믿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가르침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핵심 개념들의 차이는 아래의 표로 요약될 수 있다. 이 표는 두 개념의 다차원적 차이를 압축적으로 시각화하여, 복잡한 논의의 핵심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 구분 (Feature) | 서구 ‘Religion’ 개념 (Western ‘Religion’ Concept) | 동아시아 ‘종교’ 개념 (East Asian ‘Jonggyo’ Concept) |
|---|---|---|
| 어원적 핵심 (Etymological Core) | religare (재결속) / relegere (재독) | 宗敎 (으뜸 가르침) |
| 초월성 (Transcendence) | 인격적, 초월적 유일신 (Personal, Transcendent God) | 비인격적 도덕 원리 (天), 우주적 법칙 (道) |
| 공동체 (Community) | 배타적 도덕 공동체 (교회) (Exclusive Moral Community) | 사회 전반에 확산된 윤리 체계 (Diffused Ethical System) |
| 준수의 기반 (Basis of Adherence) | 신앙 고백 (Orthodoxy) | 윤리적 실천 및 의례 (Orthopraxy) |
| 역사적 궤적 (Historical Trajectory) | 분리화, 제도화 (Compartmentalization, Institutionalization) | 융합, 사회적 통합 (Syncretism, Social Integration) |
| 전형적 사례 (Paradigmatic Example) | 기독교 (Christianity) | 유교 (Confucianism) |
5. 개념적 충돌의 시금석, 유교
유교의 사례는 서구의 ‘Religion’ 개념과 동아시아의 전통적 ‘교(敎)’ 개념 사이의 근본적인 불일치와, 근대적 번역 과정에서 발생한 개념적 혼란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유교는 서구적 ’종교’의 틀로는 온전히 포섭되지 않으면서도, 단순한 ’철학’이나 ’윤리’로 환원될 수 없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5.1 유교는 왜 서구적 ‘종교’ 범주에 도전하는가?
유교는 서구 ‘Religion’ 개념을 구성하는 전형적인 표지들을 대부분 결여하고 있다. 첫째, 세계를 창조한 인격신이나 체계적인 창조 신화가 부재한다.28 둘째, 사후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교리나 체계적인 내세론이 미미하다. 공자는 “삶도 아직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라고 말하며, 현세의 삶과 윤리에 집중할 것을 강조했다.28 셋째,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전문적인 성직자 계급이나 배타적인 교단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 넷째,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명확한 입교 의례나 신앙고백 절차가 없다.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는 단순한 세속 철학을 넘어서는 종교적 ’기능’을 수행한다. 첫째, 인간과 우주의 근원이 되는 ’천(天)’에 대한 경외심은 분명한 종교적 감정을 포함한다.24 둘째, 조상 제사와 같은 정교한 의례는 성스러운 것과의 교감을 통해 공동체의 유대를 강화하고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종교적 역할을 한다. 셋째,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聖人)을 인간 완성의 이상으로 제시하며 삶의 궁극적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게 한다는 점에서 구원론적 차원을 지닌다.22 미국의 철학자 허버트 핑가렛(Herbert Fingarette)이 유교를 “세속적인 것을 성스럽게 여기는(the secular as sacred)” 체계라고 묘사한 것은 바로 이러한 측면을 포착한 것이다.24
따라서 유교의 사례는 “유교가 종교인가?“라는 일차원적인 질문을 넘어서, “과연 ’종교’라는 보편적 범주가 모든 문화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유교는 서구 기독교를 모델로 구성된 ’Religion’이라는 개념 틀의 한계와 문화적 편향성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20
5.2 번역이 초래한 혼란: 유교(儒敎)와 ‘종교’
근대 이후 ’religion’의 번역어로 ’종교’가 정착되면서 유교를 둘러싼 개념적 혼란은 더욱 심화되었다. 유교(儒敎)의 ’교(敎)’는 본래 ’가르침’을 의미하지만, ’종교’라는 단일 범주가 일반화되면서 서구의 ’Religion’과 동일시되는 오해를 낳았다.22 이로 인해 유교는 서구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불완전한 종교’로 취급되거나, 종교적 측면이 완전히 거세된 채 ‘철학’ 또는 ’정치 이데올로기’로 평가절하되는 운명을 맞았다.
유교를 서구적 ’종교’의 틀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유교의 본질을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공자를 기리는 사당인 공묘(孔廟)를 기독교의 교회(church)와 동일시하거나, 조상에 대한 제사를 유일신에 대한 예배(worship)로 간주하는 것은 심각한 개념적 오류다.28 공묘는 신앙 공동체의 중심이 아니라 학문과 교육, 추모의 공간이며, 제사는 신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효(孝)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는 가족 공동체의 윤리적 실천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사회 전반의 윤리 체계로서 유교가 동아시아 문명 속에서 수행해 온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역할을 간과하게 만든다.
궁극적으로 “유교는 종교인가?“라는 논쟁 자체가 서구 근대성이 비서구 세계에 가한 지적 헤게모니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이전 동아시아에서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성립 불가능했다. ’종교’라는 상위 범주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9 이 질문은 ’Religion’이라는 서구적 개념이 보편적 분석틀로 제시되면서 비로소 탄생했다.20 이 과정에서 유교는 서구적 기준에 따라 ’자격 심사’를 받는 대상이 되었으며, 그 지위가 문제시되었다. 따라서 이 논쟁을 분석하는 것은 유교 자체의 성격을 규명하는 것을 넘어, 근대 학문이 어떻게 서구 중심적 개념을 통해 비서구 세계를 재단하고 분류해왔는지를 보여주는 탈식민주의적 비판의 의미를 지닌다. 진정한 이해는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 자체의 전제를 해체하고 유교를 그 자체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6. 결론
’Religion’과 ’종교(宗敎)’의 엄밀한 차이에 대한 본 안내서의 분석은 두 용어가 단순한 번역 관계를 넘어, 세계를 조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에 있어 근본적으로 상이한 두 문명사적 궤적의 산물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서구의 ’Religion’은 신과의 ’재결속(religare)’이라는 신학적 관념을 어원적 핵으로 삼아, 세속 세계와의 ’분리’를 통해 고유한 영역을 확보하고, ’제도화’를 통해 근대적 사회 시스템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그 패러다임은 인격신, 배타적 공동체, 그리고 정통 신앙(orthodoxy)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반면, 동아시아의 전통적 ‘교(敎)’ 개념은 ’으뜸 되는 가르침(宗敎)’이라는 위계적 의미를 바탕으로, 유교, 불교, 도교가 상호 배타적이기보다는 ’융합’하고, 특정 제도에 갇히기보다는 사회 전반에 ’확산’되는 방식으로 존재해왔다. 그 핵심에는 비인격적 원리, 포괄적 사회 윤리, 그리고 올바른 실천(orthopraxy)이 자리 잡고 있다. 근대에 이르러 ’종교’라는 용어가 서구 ’Religion’의 번역어로 채택되면서, 이러한 전통적 개념은 심각한 단절과 재편의 과정을 겪었으며, 유교의 사례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개념적 충돌과 왜곡을 극명하게 증언한다.
결론적으로, ’Religion’과 ’종교’의 차이를 엄밀하게 인식하는 것은 두 문화권 사이의 피상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데 필수적이다. 이는 서구적 개념을 보편적 기준으로 삼아 타문화를 재단하는 지적 관성을 경계하고, 각 전통을 그 고유의 맥락과 논리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의 출발점이 된다. 나아가, 이는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해 온 ’종교’라는 개념 자체에 내재된 역사성과 편향성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함으로써, 보다 정교하고 다원적인 시각으로 인간의 정신적, 문화적 현상을 탐구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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